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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ine":{"headline":"한국사 컨텐츠","startDate":"0","text":"연표","date":[{"headline":"금관가야의 시조","startDate":"42","text":"김수로왕은 금관가야(金官伽倻) 의 건국 시조로 알려져 있다. 수로왕 설화를 통해 그가 이주민 계열로서 김해 지역의 토착 세력과 함께 금관가야를 건국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통치자로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금관가야라고도 하는 김해 가락국(駕洛國. 혹은 伽耶國)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수로왕에 대해서는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7.jpg","caption":"본관 : 김해(金海)<\/br>시호 : 수릉(首陵)<\/br>이칭 : 뇌질청예(惱窒靑裔)<\/br>","credit":"
김수로왕(金首露王)(금관가야)<\/p1><\/br>
42년 ~19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7.jpg"},"endDate":"199"},{"headline":"고구려 왕실의 중시조","startDate":"47","text":"태조대왕(太祖大王)은 고구려 왕실의 중시조라 칭할 수 있다. 재위 기간 중 한나라 군현과 지속적인 전쟁을 벌였고,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여 고구려의 영역을 넓혔다. 지나칠 정도로 긴 재위 연수와 수명으로 인해 그의 생몰 연도와 재위 기간에 대한 기록은 그 해석 여부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어 있다.^태조대왕은 고구...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68.jpg","caption":"이칭 : 태조왕(太祖王),국조왕(國祖王)<\/br>","credit":"
태조대왕(太祖大王)(고구려)<\/p1><\/br>
47년 ~12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68.jpg"},"endDate":"121"},{"headline":"삼국, 왕의 법을 나라 안에 선포하다","startDate":"373","text":"율령(律令)이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법과 제도이다. 왕은 자신의 이름으로 공표되는 율령을 통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통치하고자 하였다. 삼국의 율령 반포는 삼국이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음을 보여준다.^\u2018율(律)\u2019은 현재의 형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떠한 행위가 죄가 되며 그 죄를 지었을 때 어떠한 형벌을...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3.jpg","caption":" ","credit":"
율령 반포<\/p1><\/br>
373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3.jpg"},"endDate":"373"},{"headline":"광대한 영토를 넓힌 고구려의 정복 군주","startDate":"374","text":" 고구려(高句麗) 의 제19대 왕이다. 22년의 재위 기간 동안 다수의 정복 전쟁을 통해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고,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하였다.^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제18대 왕인 고국양왕(故國壤王) 의 아들로 이름은 담덕(談德)이다. 중국측 기록에는 이름이 안(安)으로 기록되어 있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5.jpg","caption":"이칭 : 안(安),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영락대왕(永樂大王),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國罡上大開土地好太聖王),개토왕(開土王),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br>","credit":"
광개토왕(廣開土王)(고구려)<\/p1><\/br>
374년 ~41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5.jpg"},"endDate":"412"},{"headline":"고구려, 나라의 중심을 옮기다","startDate":"427","text":"고구려가 행한 도읍 이전을 말한다. 고구려의 건국지인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桓仁) 지역에서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 지역으로의 이동이 첫 번째 천도이고, 지안 지역에서 평양 지역으로의 이동이 두 번째 천도이다.^문헌에 따르면 고구려 건국 지역은 졸본천(卒本川) 비류수(沸流水) 가라고 한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5.jpg","caption":" ","credit":"
고구려의 천도<\/p1><\/br>
427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5.jpg"},"endDate":"427"},{"headline":"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가른 싸움","startDate":"554","text":" 관산성(管山城) 전투는 554년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전투이다. 신라가 나제동맹을 파기하고 백제의 한강 유역을 탈취함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신라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한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분명히 하였고,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하였다.^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은 475년(개로왕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1.jpg","caption":" ","credit":"
백제신라 관산성 전투(554)<\/p1><\/br>
554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1.jpg"},"endDate":"554"},{"headline":"양제(煬帝)가 자초한 수(隋) 나라의 멸망","startDate":"598","text":"수의 중국 통일은 남조와 북조로 중원이 분열되었던 5세기와는 다른 국제 관계의 전개를 예고하였다. 진(秦)과 한(漢)의 전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원의 통일은 곧 국제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졌고 수도 중원 중심의 일원적 국제 질서의 확립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고구려와 돌궐로 대표되는 주변의 강국들은 병렬적이고 독립적이었던 기...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4.jpg","caption":"고구려수 전쟁,고수 전쟁,대수 전쟁<\/br>","credit":"
고구려·수 전쟁<\/p1><\/br>
598년 ~59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4.jpg"},"endDate":"598"},{"headline":"우중문(于仲文),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startDate":"612","text":"612년(영양왕 23) 살수(薩水: 청천강)에서 을지문덕 의 지략으로 고구려가 수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612년(영양왕 23) 봄 정월 양제는 113만 3,800명의 군사와 그 배가 되는 군량 운반자를 거느린 대병력을 이끌고 고구려와의 전쟁에 직접 나섰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현재 고구려의 영역은 원래 중국의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2.jpg","caption":" ","credit":"
살수대첩<\/p1><\/br>
612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2.jpg"},"endDate":"612"},{"headline":"나라의 명운을 걸고 제국에 맞서 싸우다","startDate":"644","text":"양제의 3차에 걸친 고구려 원정의 후유증과 무리한 토목 공사가 계속되면서 양제의 통치에 대한 수나라 백성들의 원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양제의 계속된 실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겨나고 내란이 발생하면서 수나라의 혼란은 깊어갔고 결국 수나라는 성립한지 40년도 채 되지 않아 멸망했다. 수나라를 대신하여 618년 이연이 당...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3.jpg","caption":"여당 전쟁,고당 전쟁,대당 전쟁<\/br>","credit":"
고구려·당 전쟁<\/p1><\/br>
644년 ~66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3.jpg"},"endDate":"668"},{"headline":"고구려의 멸망과 부흥 운동의 전개","startDate":"669","text":"668년 9월 평양성이 함락되고, 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 가을 9월 연남건은 군사(軍事)를 승려 신성(信誠)에게 맡겼었는데 신성은 소장(小將) 오사(烏沙)와 요묘(鐃苗) 등과 함께 당의 이적(李勣)과 내응하여 평양성이 함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보장왕(寶藏王) 을 비롯하여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2.jpg","caption":"고구려 유민 저항 운동<\/br>","credit":"
고구려 부흥 운동<\/p1><\/br>
669년 ~68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2.jpg"},"endDate":"684"},{"headline":"고구려의 유민들, 말갈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다!","startDate":"698","text":"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고구려의 민들을 강제로 당으로 이주시켰다. 당은 고구려의 유력한 지배층들을 당 내지의 빈 땅으로 옮겨 그들의 인적, 물적 기반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발해의 건국 주역들이 당의 영주(營州: 지금의 요령성 조양) 지역에서 처음 일어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696년 5월, 영주에서는 거란족 추장...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8.jpg","caption":"진국 건국<\/br>","credit":"
발해 건국<\/p1><\/br>
698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8.jpg"},"endDate":"698"},{"headline":"신라의 체제 모순을 드러낸 대규모 반란","startDate":"822","text":"신라 무열왕(武烈王) 계의 유력한 귀족이었던 김헌창(金憲昌) 이 자신의 부임지였던 웅천주(熊川州) 에서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다. 반란군은 한때 신라의 9개 주 중에서 5개 주를 장악할 정도로 기세가 거셌으나 결국 진압되었고 김헌창은 자결하였다.^785년 선덕왕(宣德王) 이 아들을 남기지 못한 채 죽으...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7.jpg","caption":" ","credit":"
김헌창의 난<\/p1><\/br>
822년 ~82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7.jpg"},"endDate":"822"},{"headline":"호랑이 젖을 먹고 자란 후백제의 창업자","startDate":"867","text":"견훤(甄萱)은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인물이다.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여 세력을 키우고, 연이은 군사적 성공으로 후삼국 시대의 주역이 되었으나 아들의 반란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견훤은 867년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서 아자개(阿慈介) 의 아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2.jpg","caption":"이칭 : 이훤(李萱)<\/br>","credit":"
견훤<\/p1><\/br>
867년 ~93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2.jpg"},"endDate":"936"},{"headline":"후삼국 혼란기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열다","startDate":"877","text":"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이로, 고려의 제1대 왕이다. 877년에 태어나서 943년(태조 26)에 죽었다. 재위 기간은 918년~943년의 26년간이다. 성은 왕(王), 이름은 건(建)이며, 자는 약천(若天)이다. 개성{開城}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 고려의 옛 도읍지이며, \u2018개경\u2019 혹은 \u2018송악\u2019으로도 불...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9.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약천(若天)<\/br>시호 : 신성(神聖)<\/br>","credit":"
태조왕건<\/p1><\/br>
877년 ~94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9.jpg"},"endDate":"943"},{"headline":"사라진 역사, 그늘의 군주","startDate":"912","text":"\u201C혜종의 신주(神主)를 순릉(順陵)으로 옮기고, 예종(睿宗)을 태묘에 합사하였다.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u2018혜종은 민(民)에게 공덕(功德)이 있으므로 마땅히 불천지주(不遷之主)로 삼아야 하는데, 이를 옮긴 것은 예(禮)가 아니다.\u2019라고 하였다.\u201D 고려사절요 권9 인종 2년 4월 종묘에 모실 신주를 교체하는 논의가 벌어졌...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4.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승건(承乾)<\/br>시호 : 의공(義恭)<\/br>","credit":"
혜종<\/p1><\/br>
912년 ~94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4.jpg"},"endDate":"945"},{"headline":"황제의 나라, 연호를 선포하다","startDate":"918","text":"\u2018칭제건원(稱帝建元)\u2019은 국왕을 황제라 칭하고 연호(年號)를 세우는 행위를 지칭한다. 일찍부터 중국과 조공(朝貢)·책봉(冊封) 관계를 맺어온 한국사에서 칭제건원이 갖는 의의는 높게 평가되어왔다. 그것은 국가 사이의 불평등성을 전제로 하는 전근대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이 중국과 차별화된 또 다른 세계의 최고권자임을 드러내는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9.jpg","caption":" ","credit":"
칭제건원<\/p1><\/br>
918년 ~127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9.jpg"},"endDate":"1275"},{"headline":"거란과의 전쟁을 끝내고 고려를 정비하다","startDate":"922","text":"현종(顯宗)은 고려의 제8대 국왕이다. 즉위 초반부터 거란의 침입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를 잘 극복하고 고려의 전성기로 가는 길을 닦았다.^현종은 목종{穆宗} 고려 제7대 국왕. 경종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목종이 사망할 무렵 불과 2세여서, 목종은 왕위를 조카 성종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0.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안세(安世)<\/br>봉호 : 대량원군(大良院君)<\/br>시호 : 원문(元文)<\/br>","credit":"
현종(고려)<\/p1><\/br>
922년 ~103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50.jpg"},"endDate":"1031"},{"headline":"큰 뜻을 품었던가, 그저 꿈을 꾸었는가","startDate":"923","text":"고려의 제3대 국왕 정종(定宗)은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45년(혜종 2) 9월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949년(정종 4) 3월에 사망하였으니, 불과 4년이 채 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재위하였다. 당시는 국내외의 정세가 여러 모로 불안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남아있는 기록이 매우 적어 자세한 상황을 알기는 어렵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5.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천의(天義)<\/br>시호 : 문명(文明)<\/br>","credit":"
정종(고려)<\/p1><\/br>
923년 ~94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5.jpg"},"endDate":"949"},{"headline":"향가를 지어 불교를 설파한 스님","startDate":"923","text":"균여(均如, 923~973)는 고려 전기의 화엄종 승려이다. 고려가 후삼국 통일{後三國統一} 고려가 후백제와 신라를 통합하고 발해 유민을 포섭하여 통일 국가를 이룩한 일. 을 이루고 지배체제를 갖추어가는 시기에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주로 활동한 시기는 광종[고려]{光宗} 대였다. 호족{豪族} 신...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5.jpg","caption":"본관 : 황주(黃州)<\/br>이칭 : 황주(黃州) 변씨(邊氏),원통대사(圓通大師)<\/br>","credit":"
균여<\/p1><\/br>
923년 ~97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5.jpg"},"endDate":"973"},{"headline":"냉철한 국왕, 왕의 힘을 키우다","startDate":"925","text":"광종(光宗)은 고려(高麗)의 제4대 국왕이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太祖 王建} 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太后} 충주(忠州) 유씨(柳氏). 공신 유긍달(柳兢達)의 딸로, 태조의 제3비이다. 자녀로 태자 태(泰), 정종(定宗), 광종(光宗), 문원대왕(文元大王) 정(貞), 증통국사(證通...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4.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일화(日華)<\/br>시호 : 대성(大成)<\/br>","credit":"
광종(고려)<\/p1><\/br>
925년 ~97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4.jpg"},"endDate":"975"},{"headline":"해동성국이 지다","startDate":"926","text":"발해에서는 793년 문왕의 사망 이후 25년간 6명의 왕이 즉위하였다. 그것은 발해의 왕위 계승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문왕의 뒤를 이어 대원의(大元義) 가 즉위하였는데 바로 피살되었고 이후 성왕(成王) , 강왕(康王) , 정왕(定王) , 희왕(僖王) , 간왕(簡王) 이 차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9.jpg","caption":" ","credit":"
발해 멸망<\/p1><\/br>
926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59.jpg"},"endDate":"926"},{"headline":"시무 28조, 고려 왕조의 기틀을 논하다","startDate":"927","text":"최승로(崔承老)는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최승로(崔丞魯)라고도 한다. 최승로는 신라 경주{慶州}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로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다. 신라의 수도였고, 고려시대에 \u2018계림\u2019으로도 불렸다. 에서 927년(태조 10)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라의 6두품인 최은함(崔殷含)이다. 『 고려사{高麗史}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2.jpg","caption":"본관 : 경주(慶州)<\/br>시호 : 문정(文貞)<\/br>","credit":"
최승로<\/p1><\/br>
927년 ~98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2.jpg"},"endDate":"989"},{"headline":"거란과의 담판으로 강동6주를 확보하다","startDate":"942","text":"서희(徐熙)는 고려 3대 국왕인 광종[고려]{光宗} 대부터 5대 국왕인 성종[고려]{成宗} 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던 정치가로, 거란(契丹)과의 1차 전쟁에서 외교적 협상으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한반도 서북부 일대에 이른바 강동6주{江東六州} 고려 시대에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4.jpg","caption":"본관 : 이천(利川)<\/br>자 : 염윤(廉允)<\/br>시호 : 장위(章威)<\/br>","credit":"
서희<\/p1><\/br>
942년 ~99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4.jpg"},"endDate":"998"},{"headline":"고려의 큰 별, 귀주에서 거란군을 섬멸하다","startDate":"948","text":"강감찬은 고려 현종[고려]{顯宗} 대(顯宗代)에 활약한 중신으로, 11세기 초반 거란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치가이다. 거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귀주대첩{龜州大捷} 3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고려가 거란군을 크게 패배시킨 전투. (龜州大捷)으로 유명하다.^강감찬은 지금의 서...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1.jpg","caption":"본관 : 금주(衿州)<\/br>봉호 :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천수현개국자(天水縣開國子),천수군개국후(天水郡開國侯)<\/br>시호 : 인헌(仁憲)<\/br>","credit":"
강감찬<\/p1><\/br>
948년 ~103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1.jpg"},"endDate":"1031"},{"headline":"아버지와 신하들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한 임금","startDate":"955","text":"고려 5대 임금으로 이름은 주(伷)이고 자는 장민(長民)이다. 955년(광종 6)에서 태어나서 981년(경종 6)에 사망했다. 재위 기간은 975년부터 981년까지이다. 아버지는 광종(光宗) 이고 어머니는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 이다. 헌애왕후(獻哀王后) 와의 사이에서 목종(穆宗) 을 낳...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1.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장민(長民)<\/br>시호 : 헌화(獻花)<\/br>","credit":"
경종(고려)<\/p1><\/br>
955년 ~98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1.jpg"},"endDate":"981"},{"headline":"억울한 이가 줄어든 세상을 향한 꿈인가, 권력 투쟁의 한 수일 뿐이었던가","startDate":"956","text":"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학창시절에 국사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이 용어를 외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대략 \u2018고려 초에 광종(光宗) 이라는 국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신하들의 사병(私兵)이자 노동력인 노비를 풀어주었다.\u2019라는 일련의 맥락이 함께 떠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6.jpg","caption":" ","credit":"
노비안검법<\/p1><\/br>
956년 ~미상","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6.jpg"},"endDate":"956"},{"headline":"유교로 국가체제를 정비하다","startDate":"960","text":"고려의 제6대 국왕인 성종(成宗)의 이름은 왕치(王治)이다. 자(字)는 온고(溫古)이다. 고려사절요 권2 성종 문의대왕 고려의 제6대 국왕인 성종(成宗)의 이름은 왕치(王治)이다. 자(字)는 온고(溫古)이다. 그의 재위 시기는 고려 초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에 많은 성과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5.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온고(溫古)<\/br>시호 : 문의(文懿)<\/br>","credit":"
성종(고려)<\/p1><\/br>
960년 ~997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5.jpg"},"endDate":"997"},{"headline":"비극적 결말에 가려진 12년의 치세","startDate":"980","text":"고려의 제7대 국왕인 목종(穆宗)은 늘 어머니인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회상된다. \u2018어린 국왕과 모후(母后)의 섭정\u2019이라는 상황만으로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쉬운데, 더구나 천추태후가 김치양(金致陽)이라는 인물과 정을 통하고 있었고, 나아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차기 국왕으로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8.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효신(孝伸)<\/br>봉호 : 양국공(讓國公)<\/br>시호 : 선령(宣靈),선양(宣讓)<\/br>","credit":"
목종<\/p1><\/br>
980년 ~100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8.jpg"},"endDate":"1009"},{"headline":"고려의 공자, 9재 학당을 설립하다","startDate":"984","text":"\u2018해동공자(海東公子)\u2019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최충(崔沖)은 고려전기 문벌귀족사회의 전성기를 열었던 인물이다. 고려는 이전의 고대국가들과 달리 출신성분에만 의거하여 개인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짓던 사회가 아니었다. 좋은 혈통을 타고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고려적 전통 하에서는 관직에 진출해 공적을 드러내었을 때 비로소 최고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5.jpg","caption":"본관 : 해주(海州)<\/br>자 : 호연(浩然)<\/br>호 :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br>시호 : 문헌(文憲)<\/br>","credit":"
최충<\/p1><\/br>
984년 ~106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5.jpg"},"endDate":"1068"},{"headline":"발해를 멸명시킨 거란, 고려를 넘보다","startDate":"993","text":"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 거란과 고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을 말한다. 국지적인 전투까지 포함하면 횟수가 매우 많으나, 크게 나누어 993년(성종 12)의 1차 전쟁, 1010년(현종 원년)의 2차 전쟁, 1018년(현종 9)의 3차 전쟁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거란은 시라무렌강 유역을 주요 근거지로 삼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2.jpg","caption":" ","credit":"
거란의 고려 침입<\/p1><\/br>
993년 ~99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2.jpg"},"endDate":"993"},{"headline":"태조 왕건의 혈통을 잇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다","startDate":"1009","text":"1009년(목종 12)에 고려의 서북면을 지키던 강조(康兆)가 국왕 목종{穆宗} 고려 제7대 국왕. 경종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목종이 사망할 무렵 불과 2세여서, 목종은 왕위를 조카 성종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성종이 사망할 때 목종을 다음 국왕으로 지명하여,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穆宗)을 시해하고 새...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1.jpg","caption":"김치양(金致陽)의 난<\/br>","credit":"
강조의 정변<\/p1><\/br>
1009년 ~100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1.jpg"},"endDate":"1009"},{"headline":"거란으로부터 고려의 자존심을 지키다","startDate":"1016","text":"덕종은 1016년(현종 7)에 태어나 1034년(덕종 3)에 사망한 고려의 9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1031년부터 1034년까지였다. 이름은 흠(欽)이고 자는 원량(元良)이다. 현종(顯宗) 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원성태후 김씨(元成太后 金氏) 이며, 비는 현종의 딸 경성왕후(敬成王后) 와 효사왕후(...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6.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원량(元良)<\/br>봉호 : 연경군(延慶君)<\/br>시호 : 경강(敬康)<\/br>","credit":"
덕종<\/p1><\/br>
1016년 ~103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6.jpg"},"endDate":"1034"},{"headline":"거란과 화친을 맺어 고려의 평화를 얻다","startDate":"1018","text":"고려 10대 국왕인 정종은 현종과 원성태후 김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덕종의 친동생이며, 문종의 이복형으로 1018년 8월 태어났고 이름은 형(亨)이다.1022년(현종 13)에 내사령 평양군(內史令平壤君)에 봉해졌고, 1027년 개부의동삼사\u2024검교태사\u2024겸내사령(開府儀同三司\u2024檢校太師\u2024兼內史令)에 임명되었다. 정종은 성격...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6.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신조(申照)<\/br>시호 : 용혜(容惠)<\/br>","credit":"
정종(고려)<\/p1><\/br>
1018년 ~104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6.jpg"},"endDate":"1046"},{"headline":"고려의 황금기를 연 국왕","startDate":"1019","text":"1019(현종 10)∼1083(문종 37). 고려의 제11대 왕이다. 재위기간은 1046∼1083년이다.이름은 휘(徽), 초명은 서(緖), 자는 촉유(燭幽)이다. 8대왕인 현종[고려]{顯宗} 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고려 제8대 왕 현종의 왕비. 김은부(金殷傅)의 딸로서 고려 제11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2.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촉유(燭幽)<\/br>시호 : 인효(仁孝)<\/br>","credit":"
문종(고려)<\/p1><\/br>
1019년 ~108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2.jpg"},"endDate":"1083"},{"headline":"고려, 거란을 좌절시키다","startDate":"1019","text":"1019년(현종 10)에 강감찬(姜邯贊) 이 중심이 되어 고려를 침입한 거란군을 귀주(龜州)에서 무찌른 전투를 말한다.^993년(성종 12) 겨울과 1010년(현종 원년) 11월에 고려를 침입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거란은 1018년(현종 9) 12월에 다시 고려를 침공하였다 . 소배압(蕭排押)을 총...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5.jpg","caption":"3차 고려(高麗)-거란(契丹) 전쟁<\/br>","credit":"
귀주대첩<\/p1><\/br>
1019년 ~101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5.jpg"},"endDate":"1019"},{"headline":"준비된 국왕, 그러나 운명의 별이 떨어지다","startDate":"1047","text":"순종(順宗)은 문종(文宗) 의 아들로, 고려의 제12대 국왕이다. 원래 이름은 왕휴(王烋)였으나, 뒤에 왕훈(王勳)으로 고쳤다. 자(字)는 의공(義恭)이다. 1047년(문종 1)에 태어났고, 1083년(문종 37)에 왕위에 올랐으나 4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고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짧은 재위 기간을 가졌던 왕이지만,...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0.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의공(義恭)<\/br>시호 : 선혜(宣惠)<\/br>","credit":"
순종(고려)<\/p1><\/br>
1047년 ~108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0.jpg"},"endDate":"1083"},{"headline":"안정된 징검다리, 고려의 전성기를 잇다","startDate":"1049","text":"고려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왕은 문종(文宗) 이다. 안정된 국제 정세 속에서 40년 가까이 왕위에 있으면서, 나라 안팎으로 평온한 시대를 이어갔다. 문종의 후대 국왕으로 주로 이야기되는 왕은 숙종(肅宗) 과 예종(睿宗) 이다. 대내적으로는 화폐 사용 장려 등의 주목되는 조치가 있었고, 대외...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9.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계천(繼天)<\/br>봉호 : 국원후(國原侯),국원공(國原公)<\/br>시호 : 사효(思孝)<\/br>","credit":"
선종(고려)<\/p1><\/br>
1049년 ~109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9.jpg"},"endDate":"1094"},{"headline":"친조카를 제거하고 왕에 오른 국왕, 부국강병을 꿈구다","startDate":"1054","text":"1054(문종 8)∼1105(숙종 10). 고려 제15대 왕. 재위 1095∼1105.초명은 희(熙)이고 즉위 후에 옹(顒)으로 고쳤다. 자는 천상(天常). 문종[고려]{文宗} 의 3남이고 어머니는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 정식명칭은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이다. 고려 제11대 문종의 비. 문종 때 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6.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천상(天常)<\/br>봉호 : 계림공(鷄林公)<\/br>시호 : 명효(明孝)<\/br>","credit":"
숙종(고려)<\/p1><\/br>
1054년 ~110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6.jpg"},"endDate":"1105"},{"headline":"고려의 왕자, 승려가 되어 천태종을 설립하다","startDate":"1055","text":"의천(義天, 1055~1101)은 고려 중기의 화엄종 승려로, 불교 개혁과 교장(敎藏) 간행의 업적을 남겼다. 고려 중기에는 귀족 문화가 융성하는 것과 함께, 불교에서는 교종 계통의 화엄종{華嚴宗}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한 불교 종파, 의상(義湘)에 의해 신라 화엄종이 개창되었다. (華嚴宗)과 법상종{法...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3.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의천(義天)<\/br>호 : 광지개종홍진우세(廣智開宗弘眞祐世祐世)<\/br>시호 : 대각국사(大覺國師)<\/br>","credit":"
의천<\/p1><\/br>
1055년 ~110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3.jpg"},"endDate":"1101"},{"headline":"고려 최고의 문장가,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다","startDate":"1075","text":"김부식(1075~1151)은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문신이다. 묘청의 난 진압과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일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손꼽힌다. 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김부식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그의 형 김부일{金富佾} 김부식의 형. 문장에 능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金富...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8.jpg","caption":"본관 : 경주(慶州)<\/br>자 : 입지(立之)<\/br>호 : 뇌천(雷川),설당거사(雪堂居士)<\/br>봉호 : 낙랑군개국후(樂浪郡開國侯)<\/br>시호 : 문렬(文烈)<\/br>","credit":"
김부식<\/p1><\/br>
1075년 ~115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8.jpg"},"endDate":"1151"},{"headline":"아버지의 뜻을 이어 여진을 정벌하다","startDate":"1079","text":"1079년(문종 33)∼1122년(예종 17). 고려 제16대 왕. 재위기간은 1105∼1122년의 17년이다. 이름은 우(俁)이다. 자는 세민(世民). 숙종[고려]{肅宗} 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명의태후{明懿太后} 고려 제15대 숙종의 비. 선종대 재상을 지낸 유홍의 딸이다. 예종 등 7남 4녀를 낳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9.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세민(世民)<\/br>시호 : 문효(文孝)<\/br>","credit":"
예종(고려)<\/p1><\/br>
1079년 ~112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9.jpg"},"endDate":"1122"},{"headline":"못 다 핀 꽃 한 송이, 먹먹함을 남기다","startDate":"1084","text":"고려의 제14대 국왕인 헌종의 이름은 왕욱(王昱)이었다. 제13대 국왕인 선종(宣宗) 과 사숙태후(思肅太后) 이씨(李氏) 사이에서 1084년(선종 1) 6월에 태어났다. 같은 사숙태후의 소생으로는 수안택주(遂安宅主) 가 있었다. 헌종은 선종의 4남 3녀 중 맏이였다. 헌종은 어려서 즉위했으나 얼마 재위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3.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시호 : 공상(恭殤)<\/br>이칭 : 회상(懷觴)<\/br>","credit":"
헌종(고려)<\/p1><\/br>
1084년 ~1097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3.jpg"},"endDate":"1097"},{"headline":"무신(武臣)들의 울분, 한 칼에 날리다","startDate":"1106","text":"정중부(鄭仲夫)는 고려 예종[고려]{睿宗} 원년(1106년) 출생하여 명종[고려]{明宗} 고려 19대 왕. 이름은 호(晧). 재위 1170~1202년. 인종의 셋째 아들로, 1170년의 무신정변으로 정중부 등에 의해 옹립되었다. 1197년 최충헌이 정권을 잡자 왕위에서 쫓겨났다. 9년(1179년) 사망...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9.jpg","caption":"본관 : 해주(海州)<\/br>","credit":"
정중부<\/p1><\/br>
1106년 ~117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9.jpg"},"endDate":"1179"},{"headline":"어질고 너그러운 국왕, 두 번의 반란을 맞이하다","startDate":"1109","text":"1109(예종 4)~1146(인종 24). 고려 제17대 왕. 1122~1146년까지 24년간 재위했다. 초명은 구(構)이고 해(楷)로 고쳤다. 자는 인표(仁表)이다. 예종[고려]{睿宗} 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순덕왕후{順德王后} 16대왕 예종의 왕비. 이자겸(李子謙)의 2녀이다. 성품이 부드럽고 슬기로워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6.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인표(仁表)<\/br>시호 : 효공(孝恭)<\/br>","credit":"
인종(고려)<\/p1><\/br>
1109년 ~114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6.jpg"},"endDate":"1146"},{"headline":"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startDate":"1122","text":"고려 인종[고려]{仁宗} 4년인 1126년에 발생한 이자겸{李資謙} 고려 예종~인종대에 주로 활동한 외척이자 관리로 자칭 지군국사(軍國事)라 하였다. 인종에 의해 귀양형에 처해졌다. 의 난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었던 이자겸이 왕위 찬탈을 시도했던 사건이다. 이자겸의 족당인 척준경{拓俊京}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8.jpg","caption":"이자겸(李資謙)의 난<\/br>","credit":"
이자겸의 난<\/p1><\/br>
1122년 ~112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8.jpg"},"endDate":"1126"},{"headline":"놀이와 환락에 빠진 국왕, 무신에게 제거되다","startDate":"1127","text":"1127(인종 5)~1173(명종 3). 고려 제18대 왕. 재위기간은 1146~1170년이다. 초명은 철(徹)이고, 나중에 현(晛)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자는 일승(日升)이다. 인종[고려]{仁宗} 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공예태후{恭睿太后} 17대 인종의 왕비. 중서령 임원후(任元厚)의 딸로, 1126년...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2.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일승(日升)<\/br>시호 : 장효(莊孝)<\/br>","credit":"
의종(고려)<\/p1><\/br>
1127년 ~117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2.jpg"},"endDate":"1173"},{"headline":"물의 기운이 융성한 서경으로 가자","startDate":"1127","text":"11세기 중반부터 대내외적인 환경이 안정되면서 고려사회는 각종 문물제도가 완비되고 지배체제가 자리잡아갔다. 그러면서 지방에 근거했던 호족들로부터 수도 개경(지금의 경기도 개성)에 자리잡은 문벌귀족들로 지배층이 변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왕실과 혼인을 맺는 일부 가문들이 유력한 가문으로 발돋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6.jpg","caption":" ","credit":"
서경 천도 운동<\/p1><\/br>
1127년 ~113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6.jpg"},"endDate":"1136"},{"headline":"무신(武臣)들에 의해 옹립된 왕","startDate":"1131","text":"고려 제19대 왕인 명종은 1131년(인종 9)에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호(晧)이고 초명은 흔(昕), 자는 지단(之旦)이다. 재위기간은 1170년부터 1197년까지이고 1202년(신종 5)에 사망하였다. 비는 강릉공(江陵公) 왕온(王溫)의 딸인 의정왕후(義靜王后) 로, 강종(康宗) 이 즉위한 후, 광정태후(光...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7.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지단(之旦)<\/br>봉호 : 익양공(翼陽公)<\/br>시호 : 광효(光孝),황명(皇明)<\/br>이칭 : 익양후(翼陽侯)<\/br>","credit":"
명종(고려)<\/p1><\/br>
1131년 ~120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7.jpg"},"endDate":"1202"},{"headline":"노년에 잠시 왕위를 스쳐 지나간 허수아비 임금","startDate":"1144","text":"신종(神宗)은 고려의 제20대 왕으로, 무신정권 시대인 1197년부터 1204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친형인 명종(明宗) 이 최충헌(崔忠獻) 의 손에 이끌려 왕좌에서 내려오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54세였고, 등창이 심해져서 아들인 희종(熙宗) 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훙서했을 때에는...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1.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지화(至華)<\/br>봉호 : 평량공(平凉公)<\/br>시호 : 정효(靖孝)<\/br>","credit":"
신종<\/p1><\/br>
1144년 ~120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1.jpg"},"endDate":"1204"},{"headline":"4명의 왕을 쥐락펴락 한 절대 권력자","startDate":"1149","text":"최충헌(崔忠獻)은 1149년(의종 3)부터 1219년(고종 6)까지 생존했던 무신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여 이후 4대 60년 동안 이어진 최씨 무신집권기를 열었던 인물이다. 그는 20여 년 동안 집권하면서 네 명의 국왕을 갈아치웠다. 스스로 중서령(中書令)이라는 고려 최고위의 관직과 진강공(晉康公)이라는 최고위 작위까지 취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6.jpg","caption":"본관 : 우봉(牛峯)<\/br>봉호 : 진강군개국후(晋康郡開國侯),진강후(晋康侯)<\/br>시호 : 경성(景成)<\/br>","credit":"
최충헌<\/p1><\/br>
1149년 ~121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6.jpg"},"endDate":"1219"},{"headline":"극과 극을 오갔던 기구한 평생","startDate":"1152","text":"고려의 강종(康宗). 역사학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역사 애호가가 아니라면 아마 귀에 낯설게 들릴 이름이다. 고려 제22대 국왕 강종은 불과 2년 동안 재위한 뒤에 사망한데다가 그 시기도 무신집권기, 그 중에서도 최충헌(崔忠獻) 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때였다. 그렇기에 국왕으로서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그러...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0.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대화(大華),법주(法柱)<\/br>봉호 : 한남공(漢南公)<\/br>시호 : 원효(元孝)<\/br>","credit":"
강종<\/p1><\/br>
1152년 ~121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0.jpg"},"endDate":"1213"},{"headline":"무신들의 횡포를 바로 잡으려던 청년 장수","startDate":"1154","text":"경대승은 고려 의종[고려]{毅宗} 8년(1154년)부터 명종[고려]{明宗} 고려 19대 왕. 이름은 호(晧). 재위 1170~1202년. 인종의 셋째 아들로, 1170년의 무신정변으로 정중부 등에 의해 옹립되었다. 1197년 최충헌이 정권을 잡자 왕위에서 쫓겨났다. 13년(1183년)까지 생존한 고려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2.jpg","caption":"본관 : 청주(淸州)<\/br>","credit":"
경대승<\/p1><\/br>
1154년 ~1183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2.jpg"},"endDate":"1183"},{"headline":"교종과 선종, 하나가 되자","startDate":"1158","text":"지눌(知訥, 1158∼1210)은 고려 중기의 선종 승려로, 불교 결사 운동을 펼치고 교선일치(敎禪一致)의 선사상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무신정변{武臣政變} 이후 무신들간의 권력 다툼을 거쳐 최충헌{崔忠獻} 이 집권 체제를 확립해가는 시기에 활동하였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뒤로 문벌귀족의 후원을 받아왔던 교종...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0.jpg","caption":"호 : 목우자(牧牛子)<\/br>이칭 : 정씨(鄭氏),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br>","credit":"
지눌<\/p1><\/br>
1158년 ~1210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0.jpg"},"endDate":"1210"},{"headline":"현실에 타협한 채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문장가","startDate":"1168","text":"이규보(李奎報)는 1168년(의종 22)에 태어나 1241년(고종 28)에 사망한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문인(文人)이자 관료이다. 원래 이름은 이인저(李仁氐)이었지만 나중에 이규보로 개명하였다. 자는 춘경(春卿)이고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등을 사용하였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본관은 지금의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3.jpg","caption":"본관 : 황려(黃驪)<\/br>자 : 춘경(春卿)<\/br>호 : 백운거사(白雲居士)<\/br>시호 : 문순(文順)<\/br>이칭 : 이당백(李唐白),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br>","credit":"
이규보<\/p1><\/br>
1168년 ~124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3.jpg"},"endDate":"1241"},{"headline":"무신(武臣)들의 새 세상이 열리다","startDate":"1170","text":"고려 의종[고려]{毅宗} 24년(1170)년에 발생한 무신정변은 한국사 전체에서도 손꼽힐만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비록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100년에 달하는 무신들의 집권이라는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고려사』의 편찬자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고려시대 역사를 전기와 후기로 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5.jpg","caption":"정중부(鄭仲夫)의 난(亂)<\/br>","credit":"
무신정변<\/p1><\/br>
1170년 ~1170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5.jpg"},"endDate":"1170"},{"headline":"농민과 천민의 항쟁, 충청도 일대를 휩쓸다","startDate":"1176","text":"망이·망소이의 난은 무신집권기 초기인 1176년(명종 6)부터 이듬해까지 약 1년 반에 걸쳐서 충청도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를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과 천민들의 봉기이다. 항쟁의 주동 인물인 망이(亡伊)와 망소이(亡所伊)의 이름을 따서 \u2018망이·망소이의 난\u2019으로 칭하지만, 항쟁의 발흥지의 지명을 따서 \u2018공주 명학...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7.jpg","caption":"공주명학소의 난<\/br>","credit":"
망이·망소이의 난<\/p1><\/br>
1176년 ~1177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7.jpg"},"endDate":"1177"},{"headline":"허수아비 임금 노릇을 거부하다","startDate":"1181","text":"희종(熙宗)은 신종(神宗) 의 맏아들로, 1181년(명종 11) 5월에 태어나 1237년(고종 24)에 사망한 고려의 제21대 왕이다. 그는 1200년(신종 3)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1204년에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영(韺)이고 초명은 덕(悳), 자는 불피(不陂)이다.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靖宣太后 金氏)이며,...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5.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불피(不陂)<\/br>시호 : 성효(誠孝),인목(仁穆)<\/br>","credit":"
희종<\/p1><\/br>
1181년 ~1237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5.jpg"},"endDate":"1237"},{"headline":"고난 속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재위한 고려의 임금","startDate":"1192","text":"조선왕조 27명의 국왕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한 임금은 제21대 영조(英祖) 로 총 52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한편 고려왕조 34명의 국왕 가운데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은 제23대 고종(高宗)이다. 그는 1213년(강종 2) 우리 나이로 20세에 왕위에 올라 1259년(고종 46년) 사망할 때까지 총 45년 10개...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2.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대명(大命),천우(天祐)<\/br>시호 : 안효(安孝),충헌(忠憲)<\/br>","credit":"
고종(고려)<\/p1><\/br>
1192년 ~125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2.jpg"},"endDate":"1259"},{"headline":"왕, 제후, 장수, 재상은 때가 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startDate":"1198","text":"만적의 난은 1198년 5월에 고려의 수도인 개경(현재의 개성)에서 발생한 노비들의 봉기이다. 1170년에 정중부{鄭仲夫} , 이의방{李義方} 고려 중기의 무신. 무신정변 당시 정8품의 산원으로 이를 주도하였고, 정변 직후 명종 4년(1174년)까지 정권을 장악하였던 인물. , 이고{李高} 고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3.jpg","caption":" ","credit":"
만적의 난<\/p1><\/br>
1198년 ~119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3.jpg"},"endDate":"1198"},{"headline":"고대의 신비로운 이야기도 우리의 역사","startDate":"1206","text":"일연(一然, 1206~1289)은 고려 후기의 승려이다. 그는 무신정권이 최충헌{崔忠獻} (崔忠獻)과 최우{崔瑀} (崔瑀)의 집권으로 안정되어 가는 시기에 태어나 성장하였다. 그런데 13세기 초는 몽골이 정복 활동을 활발히 벌이며 세계 제국을 형성해가는 시기였다. 몽골의 고려침입 을 받은 고려는 강화도로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7.jpg","caption":"자 : 회연(晦然)<\/br>호 : 목암(睦庵)<\/br>이칭 : 김씨(金氏),보각국사(普覺國師)<\/br>","credit":"
일연<\/p1><\/br>
1206년 ~128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7.jpg"},"endDate":"1289"},{"headline":"고려의 대표 명장","startDate":"1212","text":"김방경의 본관은 안동(安東) 으로, 『고려사』 열전에서는 그가 신라 경순왕(敬順王) 의 먼 후손이라고 밝혀두었다. 고려사 권104, 김방경 김방경의 가문 배경에 대한 고려사 열전의 설명이다. 1212년(강종(康宗) 1) 출생하였다. 그의 가문은 그의 조부 때까지는 안동의 향리(鄕吏) 등을 지내오다가, 병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5.jpg","caption":"본관 : 안동(安東)<\/br>자 : 본연(本然)<\/br>봉호 : 상락공(上洛公),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br>시호 : 충렬(忠烈)<\/br>","credit":"
김방경<\/p1><\/br>
1212년 ~1300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75.jpg"},"endDate":"1300"},{"headline":"몽골의 도움을 얻어 왕정복고를 이룩한 임금","startDate":"1219","text":"원종(元宗)은 고려 제24대 왕으로, 이름은 왕식[王禃]이고 원래 이름은 왕전(王倎)이며, 자는 일신(日新)이다. 고종(高宗) 의 맏아들로, 모친은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며, 1219년(고종 6) 3월에 출생하였다. 고려사 권25, 원종 총서 고려사 원종 세가 첫머리에, 원종의 이름과 출생 등에 대해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2.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일신(日新)<\/br>시호 : 충경(忠敬),순효(順孝)<\/br>","credit":"
원종<\/p1><\/br>
1219년 ~127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2.jpg"},"endDate":"1274"},{"headline":"고려, 떠오르는 몽골과 처음으로 대면하다","startDate":"1219","text":"잘 알려져 있듯이 칭기스칸이 몽골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대칸의 지위에 오른 것은 1206년의 일이었다. 그는 곧이어 남쪽과 서쪽으로 인류 역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원정을 시작하였다. 몽골군이 도달한 동쪽의 끝은 고려였다. 그런데 몽골군이 본격적으로 고려에 침입 해온 것은 고려 1231년( 고종(高宗) 18)...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4.jpg","caption":"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br>","credit":"
강동성 전투<\/p1><\/br>
1219년 ~121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4.jpg"},"endDate":"1219"},{"headline":"역사를 통해 고려의 위상을 바로세우다","startDate":"1224","text":"이승휴는 고려의 국제적 위상과 내정을 바로세우기 위해 고심하였던 고려후기의 대표적 문신이다. 1224년( 고종(高宗) 11)에 출생하여 1300년( 충렬왕(忠烈王) 26)에 사망한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고려의 대내외적 상황이 격변하던 시대를 살았다. 그전까지 중국 왕조들과 조공-책봉 관계를 이어나가면서도 \u2018...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4.jpg","caption":"본관 : 가리(加利)<\/br>자 : 휴휴(休休)<\/br>호 : 동안거사(動安居士)<\/br>","credit":"
이승휴<\/p1><\/br>
1224년 ~1300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4.jpg"},"endDate":"1300"},{"headline":"세계를 뒤흔든 몽골 기마병, 고려로 밀려오다","startDate":"1231","text":"1231년의 1차 침입을 시작으로 한 몽골의 고려 침입은 1259년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講和)가 이루어질 때까지 거의 30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지속되며 고려 사회에 큰 피해를 주었다. 고려가 몽골에 대한 항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고려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1차 침입 직후 최씨정권이 강화...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4.jpg","caption":" ","credit":"
몽골의 고려침입<\/p1><\/br>
1231년 ~1270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44.jpg"},"endDate":"1270"},{"headline":"원나라 황제의 사위가 된 고려왕","startDate":"1236","text":"고려의 제25대 왕인 충렬왕은 1236년(고종 23) 원종[고려]{元宗} 고려 제24대 왕. 초명은 전(倎) 이름은 식(植). 재위 1259~1274년. 고종의 장자로 1259년 몽골에 가서 양국간 강화를 성사시켰다. 1269년 권신 임연에 의해 폐위되었으나 몽골의 도움으로 복위하고 개경환도를 단행했다. 몽골군...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7.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시호 : 충렬(忠烈),경효(敬孝)<\/br>","credit":"
충렬왕<\/p1><\/br>
1236년 ~130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7.jpg"},"endDate":"1308"},{"headline":"주자학의 선구자","startDate":"1243","text":"안향(安珦)은 고려후기 학문 풍토를 변화시켜 이후 세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의 대표적 유학자이다. 문신관료로서도 활동하였던 그는 충렬왕{忠烈王} · 충선왕{忠宣王} 의 집권기 동안 원(元)의 선진 학문인 성리학(性理學)을 고려에 소개하였으며, 국학(國學) 개혁과 과거시험 주재를 통해 새로운 학파가 성장할 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8.jpg","caption":"본관 : 순흥(順興)<\/br>자 : 사온(士蘊)<\/br>호 : 회헌(晦軒)<\/br>시호 : 문성(文成)<\/br>","credit":"
안향<\/p1><\/br>
1243년 ~130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8.jpg"},"endDate":"1306"},{"headline":"바람으로 시작되어 바람으로 마무리된 전쟁","startDate":"1274","text":"1274년( 충렬왕 즉위년)과 1281년(충렬왕 7) 두 차례에 걸쳐 단행된 대규모의 일본 원정은 국제전쟁이자 당시까지는 인류사상 최대의 해양원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는 쿠빌라이칸의 몽골제국이었지만, 공격에 동원된 군사의 상당수는 고려와 남송(南宋)의 군대였다. 2차 원정에 동원된 군사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8.jpg","caption":" ","credit":"
몽골의 일본원정<\/p1><\/br>
1274년 ~1281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E0068.jpg"},"endDate":"1281"},{"headline":"팍스몽골리카 시대의 혼혈 국왕","startDate":"1275","text":"고려의 제26대 왕인 충선왕은 1275년에 충렬왕{忠烈王} 과 몽골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원 세조의 딸로 1274년 충렬왕과 결혼했다. 충선왕의 어머니이다. 의 장자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왕원(王謜)이었으며, 후에 이름을 고쳐 왕장(王璋)이라 했다. 몽골 이름은 이지르부카(益...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8.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중앙(仲昻)<\/br>시호 : 충선(忠宣)<\/br>이칭 : 익지례보화(益知禮普花),태위왕(太尉王)<\/br>","credit":"
충선왕<\/p1><\/br>
1275년 ~132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8.jpg"},"endDate":"1325"},{"headline":"고려의 지식인, 원제국의 수도에서 학문을 논하다","startDate":"1287","text":"이제현(李齊賢)은 원(元) 제국의 힘이 고려를 잠식해가던 시기 고려 왕조의 명맥을 지키기 위하여 헌신한 정치가이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시대사조로 부상하고 있던 성리학이 고려 지식인 사회로 확산되어 보다 높은 이해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한 유학자이기도 하다. 원 내부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고려국왕의 즉위·폐위...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5.jpg","caption":"본관 : 경주(慶州)<\/br>자 : 중사(仲思)<\/br>호 : 익재(益齋),역옹(櫟翁)<\/br>봉호 : 김해군(金海君),부원군(府院君),김해후(金海侯),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br>","credit":"
이제현<\/p1><\/br>
1287년 ~1367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5.jpg"},"endDate":"1367"},{"headline":"고려국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사투를 벌이다","startDate":"1294","text":"충숙왕(忠肅王)은 제27대 고려국왕으로서 원(元) 제국의 힘이 고려의 내정 깊숙이 침투하던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아버지 충선왕(忠宣王) 이 적극적으로 원 황실의 권력투쟁에 개입하여 자신의 기반을 확보한 결과, 충숙왕은 그 대가를 감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원 황실에서 권력의 향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따라 고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0.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자 : 의효(宜孝)<\/br>봉호 : 강릉군승선사(江陵軍承宣使),강릉대군(江陵大君)<\/br>시호 : 충숙(忠肅),의효(懿孝)<\/br>이칭 : 아랄눌특실리(阿剌訥忒失里)<\/br>","credit":"
충숙왕<\/p1><\/br>
1294년 ~1339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0.jpg"},"endDate":"1339"},{"headline":"한국 선종의 큰 스님","startDate":"1301","text":"태고 보우(太古普愚)는 고려말에 활동한 선종 승려이다. 공민왕{恭愍王} 대에 왕사와 국사{國師·王師} 고려부터 조선초기까지 시행되던 제도로 덕높은 고승에게 국사와 왕사의 법계를 주었다. 로 봉해졌으며 보우를 필두로 하는 임제태고법통설(臨濟太古法統說)은 조선후기 주된 법맥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 대한불교조...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3.jpg","caption":"호 : 태고(太古)<\/br>시호 : 원증(圓證)<\/br>이칭 : 홍씨(洪氏),보허(普虛),보월승공(寶月昇空)<\/br>","credit":"
보우<\/p1><\/br>
1301년 ~138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3.jpg"},"endDate":"1382"},{"headline":"두 번의 즉위와 두 번의 폐위","startDate":"1315","text":"충혜왕은 고려의 제28대 왕으로, 고려 정치에 끼친 원나라의 영향력이 강력하였던 14세기 전반에 두 차례 왕위에 있었다. 첫 번째 재위 기간은 1330년( 충숙왕(忠肅王) 17)부터 약 2년 정도였고, 두 번째 본격적인 재위는 충숙왕이 죽은 뒤인 1340년부터 약 3년 반 정도 이어졌다. \u201C악소배들을 가까이하고 황음...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2.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시호 : 충혜(忠惠),헌효(獻孝)<\/br>이칭 : 보탑실리(普塔失里)<\/br>","credit":"
충혜왕<\/p1><\/br>
1315년 ~134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2.jpg"},"endDate":"1344"},{"headline":"요동 정벌을 꿈꾼 고려의 명장","startDate":"1316","text":"최영(崔瑩)은 1316년(충숙왕 3)에 출생하여 1388년(공양왕 원년)까지 생존했던 고려 후기의 무신이다. 그는 공민왕{恭愍王} 대와 우왕{禑王} 대에 고려 정계에서 활동하며, 안으로는 거듭된 반란과 정치적 격변을 한가운데에서 겪었고, 밖으로는 홍건적의 난{紅巾賊-亂} 과 왜구{倭寇} 의 끊임없...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3.jpg","caption":"본관 : 동주(東州)<\/br>봉호 :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br>시호 : 무민(武愍)<\/br>","credit":"
최영<\/p1><\/br>
1316년 ~138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3.jpg"},"endDate":"1388"},{"headline":"화약으로 왜구를 무찌르다","startDate":"1325","text":"최무선은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무신이다. 그는 염초를 제조하는 비법을 익히고 보급하여 고려의 화약무기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고려는 오랫동안 왜구{倭寇} 의 침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화약무기는 이를 격퇴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서는 최무선의 화약무기 개발 공로와 그 영향...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1.jpg","caption":"본관 : 영주(永州)<\/br>봉호 :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br>","credit":"
최무선<\/p1><\/br>
1325년 ~139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41.jpg"},"endDate":"1395"},{"headline":"이성계의 왕조 개창을 예견하다","startDate":"1327","text":"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는 고려말~조선초에 활동한 불교 승려이다. 지공(指空)에서 나옹혜근(懶翁慧勤)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전해 받아 저들과 함께 고려말 삼화상(三和尙)으로 일컬어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에게 깊은 존경을 받아 조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왕사(王師)가 되었다.^무학대사는 그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028.jpg","caption":"호 : 무학(無學)<\/br>","credit":"
무학대사<\/p1><\/br>
1327년 ~1405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028.jpg"},"endDate":"1405"},{"headline":"원나라 과거에 합격한 인재, 고려에서 성균관을 중건하다","startDate":"1328","text":"이색(李穡)은 고려말인 1328년( 충숙왕{忠肅王} 고려 제27대 왕. 이름은 도(燾), 몽골식 이름은 아자눌특실리(阿刺訥忒失里). 사촌인 심왕 왕고가 고려국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무고하여 5년간 몽골에 억류되기도 했다. 1330년, 아들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가 1332년 복위했다. 15)에 출생하여 조선...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4.jpg","caption":"본관 : 한산(韓山)<\/br>자 : 영숙(穎叔)<\/br>호 : 목은(牧隱)<\/br>봉호 : 한산군(韓山君),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한산백(韓山伯)<\/br>시호 : 문정(文靖)<\/br>이칭 : 삼은(三隱)<\/br>","credit":"
이색<\/p1><\/br>
1328년 ~1396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4.jpg"},"endDate":"1396"},{"headline":"목화가 가져 온 의생활의 혁명","startDate":"1329","text":"문익점(文益漸)은 고려 충혜왕{忠惠王} 고려 제28대 왕.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실정이 많았고, 1339년 충숙왕 사망 후 복위했으나 1344년 원에 의해 유배되던 중 사망했다. 1년(1331년)에 태어나 조선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6년(1397년) 사거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관료이다....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1.jpg","caption":"본관 : 단성(丹城),남평(南平)<\/br>자 : 일신(日新)<\/br>호 : 삼우당(三憂堂)<\/br>봉호 : 강성군(江城君),부민후(富民候)<\/br>시호 : 충선공(忠宣公)<\/br>","credit":"
문익점<\/p1><\/br>
1329년 ~139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21.jpg"},"endDate":"1398"},{"headline":"원나라 공주를 사랑한 고려왕, 고려의 부흥을 위해 힘쓰다","startDate":"1330","text":"고려의 31대 왕인 공민왕은 1351년에 즉위해 1374년에 시해당하기까지 23년간 재위했다. 그가 재위한 시기는 대외적으로 몽골(원)의 쇠퇴가 가시화하고 명이 중국대륙을 장악해갔던 시기이다. 대내적으로는 100여년 이상 지속되었던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고려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혼란, 국왕 위상의 약화가 극대화하...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3.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호 : 이재(怡齋),익당(益堂)<\/br>봉호 : 강릉대군(江陵大君),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br>시호 : 공민(恭愍)<\/br>이칭 : 백안첩목아(伯顏帖木兒)<\/br>","credit":"
공민왕<\/p1><\/br>
1330년 ~1374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13.jpg"},"endDate":"1374"},{"headline":"새로운 왕조의 주인공이 된 변방의 무장","startDate":"1335","text":"이성계는 고려 말의 홍건적의 난과 왜구 격퇴에서 무공을 세워 유명해졌으며,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한 손에 쥐었다. 신흥 정치세력과 연계하여 고려를 대체하는 새 왕조 \u2018조선\u2019을 건국하였고, 통상적으로는 묘호를 따라서 태조라고 부른다. 1392년부터 1398년까지 7년간 재위하였으며 왕...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00.jpg","caption":"본관 : 전주(全州)<\/br>자 : 중결(仲潔),군진(君晋)<\/br>호 : 송헌(松軒)<\/br>시호 :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br>","credit":"
태조이성계<\/p1><\/br>
1335년 ~140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00.jpg"},"endDate":"1408"},{"headline":"짧았던 삶, 좌절된 개혁","startDate":"1337","text":"제29대 고려국왕이었던 충목왕(忠穆王)은 고려에 대한 원(元)의 내정간섭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즉위 이전 충렬왕(忠烈王) 부터 충혜왕(忠惠王) 에 이르는 고려국왕들은 원의 정세 변화와 더불어 심각한 부침을 겪었다. 원에서 누가 권력을 장악하였는가에 따라 국왕의 폐위나 복위가 결정되는 상...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9.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시호 : 충목(忠穆),현효(顯孝)<\/br>이칭 : 팔사마타아지(八思麻朵兒只)<\/br>","credit":"
충목왕<\/p1><\/br>
1337년 ~134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89.jpg"},"endDate":"1348"},{"headline":"고려를 향한 일편단심, 선죽교에서 쓰러지다","startDate":"1337","text":"\u201C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u201D로 시작하는 단심가{丹心歌} 고려말 정몽주가 지은 시조.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답하는 노래로, 고려에 대한 절의를 담고 있다. 의 저자 정몽주(鄭夢周). 명운이 다해가는 고려왕조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충신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정몽주가 ...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8.jpg","caption":"본관 : 영일(迎日)<\/br>자 : 달가(達可)<\/br>호 : 포은(圃隱)<\/br>봉호 : 영원군(永原君),익양군충의군(益陽郡忠義君),익양군충의백(益陽郡忠義伯)<\/br>시호 : 문충(文忠)<\/br>","credit":"
정몽주<\/p1><\/br>
1337년 ~139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38.jpg"},"endDate":"1392"},{"headline":"원나라에 의해 왕이 되었다가 쫓겨난 어린 왕","startDate":"1338","text":"충정왕(忠定王)은 고려의 제30대 왕으로, 고려가 몽골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말기인 1349년부터 1351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즉위할 때 나이가 12세였으며, 2년 6개월 남짓 재위하였다가 왕위에서 밀려나서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이듬해 독살당하였다. 고려 정치에 대한 원나라 조정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자 종국으...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1.jpg","caption":"본관 : 개성(開城)<\/br>시호 : 충정(忠定)<\/br>이칭 : 미사감타아지(迷思監朶兒只)<\/br>","credit":"
충정왕<\/p1><\/br>
1338년 ~1352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191.jpg"},"endDate":"1352"},{"headline":"조선의 왕을 만들다","startDate":"1342","text":"정도전은 역성혁명을 성공시켜 조선왕조 개창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자, 조선 초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여 새 왕조의 기틀을 잡았다고 평가받는 고려 말·조선 초의 사상가·정치가이다. 본관은 봉화이고, 호는 삼봉(三峯)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아버지 형부상서 정운경{鄭云敬} 고려시대 문신으로 이곡과 교유하였...
<\/a>","asset":{"thumbnail":".\/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081.jpg","caption":"본관 : 봉화(奉化)<\/br>자 : 종지(宗之)<\/br>호 : 삼봉(三峰)<\/br>봉호 : 봉화현 충의군(奉化縣忠義君), 봉화백(奉化伯)<\/br>시호 : 문헌(文憲)<\/br>","credit":"
정도전<\/p1><\/br>
1342년 ~1398년","media":".\/images\/egovframework\/headImageThumbnail\/N0081.jpg"},"endDate":"1398"},{"headline":"고려의 마지막 임금","startDate":"1345","text":"공양왕은 고려의 제34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1345년(충목왕 원년) 출생하여 1389년(공양왕 원년) 11월에 왕위에 올라 1392년(공양왕 4) 7월까지 약 32개월 동안 재위하였으며, 1394년(태조 3) 사망하였다. 이름은 왕요(王瑤)이고, 신종(神宗) 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왕균(王...